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1388’전화를 이용하고 있을까? 1388 전화는 청소년은 물론, 청소년과 관련해서 도움이 필요할 때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전화다. 전화로 간단히 상담받을 수도 있고, 내방해서 상담자와 개별적으로 상담받을 수도 한다. 만약 상담실 내방이 곤란한 상태라면 직접 찾아가서 만나는 방문 서비스도 있다.
나 역시 경험하지만, 내 아이의 문제들을 터놓고 이야기할 곳이 많지가 않다. 아이가 나쁘게 비춰질까 찜찜하기도 하고, 들어주는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어서 말을 시작했다가도 서둘러 마무리하기 일쑤다.
“혹시 상담 받은 기록이 남나요? 학교나 외부에 전달이 되나요?” 상담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부모님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한번은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때문에 난처한 일이 있었다. 주변에서 조언이나 위로의 말이 있었지만, 여전히 마음은 체한 것처럼 답답했다. 억울한 마음도 들고 하소연하고 싶기도 하고 복잡했다. 그때 아는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야기 들었어요. 지금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전화했어요. 우리 아이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때 얼마나 속이 후련했는지 모른다. 상담실은 그런 곳이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와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곳.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사이다를 마신 듯 속이 뻥 뚫리는 그날의 기분을 지금도 기억한다.
최근에 남자 중학생이 죽고 싶다며 울면서 전화했다. 퇴근하려던 발길을 돌려 당직자와 학생이 있는 곳으로 갔다. 사연이 있겠지. 다 큰 남자아이가 꺼이꺼이 운다.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아이를 일단 사무실로 데리고 왔다. 조금씩 진정이 되는지 학교나 집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토해낸다. 하루만이라도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아이. 억지로 보낼 수가 없어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아버지가 단단히 화가 나셨나보다. “죽더라도 길에 내버려두지 왜 데려갔느냐? 오늘 들어오지 않으면 평생 오지 말라고 전해라. 너희가 책임을 져라.” 아이는 아버지의 반응을 전해 듣고 부들부들 온몸을 떠는데..... 이럴 때 참 난감하다.
결국은 아이를 설득하여 함께 집으로 갔다. 늙은 할머니가 울고 계시고, 화가 난 아버지가 소리를 지른다. 아이는 묵묵히 듣는다. 이대로 두고 오면 그 이후가 너무 걱정스럽잖은가? 아버지와 골목에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 역시 아이들을 키우면서 힘든 일이 왜 없었겠는가? 특히 사고를 많이 쳤던 아이의 누나 때문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단다. 그런데 막내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외부에서 보호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으니 솟구치는 화를 주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보슬보슬 비 내리는 골목에 서서 그렇게 한참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아까 소리질러서 미안해요.” 어두워서 표정까진 못봤지만 아버지가 나를 보며 사과를 하신다. 다행이다. 안심하고 돌아왔다.
내 자식의 치부를 누군가와 상의한다는 게 참 어렵다. 주변에 함께 고민을 나눠줄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혹시 청소년상담사의 도움을 받고 싶거나 답답함을 나누고 싶다면 1388 전화를 이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강원도청소년상담복지센터 상담팀장 한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