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진 학부모(소양초교 2학년 오지우, 5학년 오선우 어머니)
몇 년 전 큰아이가 쓴 자기소개서에 ‘조력자’라는 단어가 있었다. 조력자. 말 그대로 리더를 도와주는 역할이다. 게다가 자신은 ‘리더십은 없지만 리더가 빛나게 할 수 있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은 최고’라는 설명까지 곁들여 놓았다. 그 문장을 읽노라니 아이에게 가졌던 내 기대가 얼마나 컸던 것일까 하는 생각에 속이 상하고 말았다. 세상이 리더를 강요하는 시대다. 그렇듯 모든 사회적 조직에는 리더가 있게 마련이고 하물며 학생들이 반에서 하는 작은 모둠 활동에도 리더는 존재한다. 부모로서 내 아이가 하나의 집단을 멋지게 이끌어가는 일은 얼마나 만족스러운가? 응당 리더라면 갖춰야 할 통솔력과 자신감은 내 아이의 것만이 아니라 내(부모) 것이 될 수도 있기에 더욱 욕심내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리더가 존재하려면 조력자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세상 많은 위인 뒤에도 위대한 조력자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리더만을 원한다. 1등이 있으려면 2등도, 꼴등도 있어야 한다. 그건 2등과 꼴등이 무능하다는 뜻이 아니라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야만 리더가 드러날 수 있다는 말이다. 어쨌건 리더는 드러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단순한 논리를 잊고 사는 이유는 뭘까? 그저 돋보이고 드러나는 일에만 치중된 우리의 얄팍한 심리를 이용한 시대적 오류는 아닐까? 그래서 모두 보여지는 일에만 더욱 열광하는 것은 아닐까?
내 아이가 열어둔 그 조력자의 마인드라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솔직하고 멋진 말이었는지 새삼 아이에게서 배운다. 리더십은 어쩌면 만들어지는 것보다 타고난 것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력자는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그 크기를 늘릴 수 있다. 조력자의 힘으로 리더는 빛이 난다. 조력자의 능력이 곧 리더의 능력이 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힘이지 않은가?
역시나 내 아이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열심히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단순히 보조하는 일이 조력자의 역할은 아니다. 리더보다 더 많은 정보력과 아이디어를 내면서도 자신이 드러나는 일은 지양하는 모습. 세상이 바라는 리더의 모습은 아닐지언정 더욱 빛이 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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