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솜씨
한국 위인 유관순
icon 버들초등학교 4학년 5 신효원
icon 2019-08-13 12:18:00  |   icon 조회: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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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에 서대문 형무소를 다녀와서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 더 관심이
많아졌다. 그래서 나는 규관순 열사에 대해 알아보려고 자료를 조사해 보게
되었다.
유관순 열사는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 지령 마을에서 1902년에
태어났다. 유관순 열사는 외동딸이었고, 오빠나 동생은 다 남자였다. 유관순
열사는 어려서부터 똑똑해서 서울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유관순 열사는
''잔다르크''의 전기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 유관순 열사는 ''잔다르크처럼
나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있을까?''궁금해 했다.
유관순 열사는 나라를 위해 싸우시고 목숨까지 바친 훌륭한 분이셨다.
1919년 유관순 열사가 열 일곱 살이 되었을 해 일월에 고종황제가 돌아가셨다.
왜냐하면 일본인들이 고종황제가 마시는 차에 독약을 넣었던 것이다. 이때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나 독립만세운동도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민족 대표
33인은 독립을 선언했고, 모인 사람들은 ''공약 삼장''을 읽었다.그 일로 인해
일본 형사가 이와 학당에 들이닥쳤다. 그래서 유관순 열사가 다니던 학당은
문을 닫았고, 유관순 열사는 하는 수없이 고향으로 내려갔다.
유관순 열사는 서울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음력 3월 1일 아오내 장날에 만세운동을 하기로 했다. 유관순
열사는 사람들을 모아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육한순 열사는 만세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헌병대에 끌려갔다. 그리고 공주에 있는 재판소에 가서 재판을 받았지만
당당하게 말했다. 유관순은 7년형 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고문을 받다가 돌아가셨다.
유관순 열사는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셨다.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만세운동을 벌였기 때문에 일본이 더 쉽게 물러나간 것 같다.물론 우리 독립운동가들 때문에
일본이 물러간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던 옥립운동가들이
대단하신 것 같다. 우리나라를 지켜주신 독립운동가 분들께 감사하다.
음력
2019-08-13 12: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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